한국의 선사시대는 다양한 문화와 기술이 긴 기간 동안 발전한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 시대는 크게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로 나눌 수 있으며, 생활 방식, 도구 사용, 사회 구조가 각기 다릅니다.
구석기 시대
한국의 구석기시대는 약 70만 년 전에 시작되어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선사 시대의 초기 단계에 해당하며, 초기 호모(Homo) 종이 약 700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 시작하여 약 2백만 년 전에 유라시아 대륙으로 퍼져 나왔다고 알려져 있으며, 동아시아 지역에는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가 약 150만 년 전에 도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시작에 대한 정확한 시기나 초기 인류의 이동 경로는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한반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구석기 시대 유적은 단양 금굴로 약 70만 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한반도에 초기부터 인류의 활동이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기후는 오늘날과 달리 크게 변동하였으며 주로 냉각기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 시기는 기후 변화와 자연환경은 초기 인류의 생활 방식, 이동 패턴 및 식습관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온난한 산림이 건조하고 추운 환경으로 기후 변화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되며, 지질학적 따라 다양한 지형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환경 변화로 인해 구석기 시대의 인류는 생존과 유지를 위한 다양한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고 적응하는 환경을 겪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생활은 주로 사냥과 채집을 하였습니다. 인류는 고기를 얻기 위해 동물을 사냥하고, 식물을 채집해 식량을 확보했습니다. 이 시기에는 화석화된 나무나 돌로 만든 도구들을 사용하여 사냥과 식량 채집에 하였으며, 주로 동굴이나 자연환경을 이용하여 생활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들은 또한, 불을 만들어 요리하거나 보호하는 기술을 습득했으며, 이는 식사의 질을 향상시키고 추위로부터 보호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중기 구석기 시대에는 손도끼와 같은 큰 도구들이 나타났고 후기 구석기 시대에는 화살촉이나 소형 석기 등 더 정교한 도구들이 등장했습니다. 후기 구석기 시대의 인류는 동굴을 비롯한 다양한 장소에서 삶의 흔적을 남겼으며, 동굴벽화나 돌에 새긴 그림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사냥 장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구석기 시대 인류는 사냥, 식량 채집, 목재 가공 등 생활에 필요한 "뗀석기"를 포함한 다양한 도구를 제작하여 사용했습니다. 이 시기 인류는 이동성 생활을 하며, 고대 유적지 발굴 결과를 보면 큰 강이나 하천 주변에서 주로 생활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신석기 시대
신석기시대는 주로 구석기시대 말기인 기원전 1만 년경에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플라이스토세가 끝나고 기후가 오늘날과 같이 변화하면서 농업 생산에 적합한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환경의 변화로 농업을 시작되면서 생산경제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았으며, 어업, 수렵, 채집도 농업과 함께 발전하였습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정착 생활이 시작되었으며, 생활 방식과 사회구조, 문화가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가나 바닷가와 같은 물이 가까운 곳에서 마을을 이루며 살았으며, 공동체 구성원 간의 연대감과 사회구조가 점점 더 복잡해졌습니다. 돌을 갈아 만든 간석기와 토기의 발명이 이 시기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특히 토기의 사용은 식량 보관법과 조리 방법에 큰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경기도 의왕의 '단계리 염탕지'에서 발견된 '단계리 인간 화석'과 강원도 삼척의 '북삼척 화석' 은 신석기시대 초기 인류의 흔적으로 이런 유물들을 통해 한반도 지역에 고대 인간이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청동기시대와 철기시대
청동기 시대와 철기시대는 인류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기였습니다. 이 두 시기는 청동과 철을 사용하는 시대로, 기술적, 경제적, 사회적 변화를 가져오는 시기였습니다.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 중 하나로 청동, 청자 등의 재료가 사용되었던 시대를 말합니다.
청동기 시대는 청동이 주재료로 쓰이며, 농업사회로의 중요한 전환점을 말합니다. 이 시기에는 청동 제작 기술이 개발되어 다양한 도구, 무기 그리고 예술품 등이 생산되었습니다. 또한, 농업 생산이 확대되면서 농업 경제가 발전하게 되었고, 이러한 변화는 사회의 복잡성 증가, 인구의 증가, 도시 형성 그리고 무역의 활성화로 이어졌습니다. 문화와 예술의 발전도 이 시기의 중요한 특징이며, 사회적 계층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철기시대는 청동기 시대 이후 기원전 300년부터 서기 300년 사이에 해당합니다. 이 시대는 청동 대신 청자도 사용되었으나, 주로 철이 핵심적인 재료로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입니다. 철은 청동보다 강도가 높고, 생산이 더 용이하여 무기와 도구의 품질을 향상시켰습니다. 철기의 보급은 농업 생산성의 향상과 강력한 군사력 확보로 이어져 국가 형성과 왕권 강화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특히, 한반도에서는 고조선과 같은 국가들이 계속해서 발전하고 중앙집권체제가 강화되었습니다. 농업과 군사 기술의 발달로 국가 형성과 사회 구조의 발전하는 등 인류 역사에서 큰 변화를 가져온 시기였습니다.
고조선
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 단군왕검이 건국한 나라로, 한국 역사의 서막을 열고 동북아시아에 큰 영향을 미친 최초의 국가 중 하나입니다. 그 기원과 역사는 다양한 전설과 역사적 기록과 얽혀 있으며, 초기에는 한반도 북부와 만주 일대의 중심으로 발전했습니다.
고조선의 성립은 단일 집단이 아닌 다양한 부족 민족들이 통합되면서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중앙집권적인 국가 체제로 발전해 나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생산 능력이 향상되고 사유 재산이 증가하면서 빈부격차가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이에 따라 정치와 군사적 업무를 맡은 지배층과 생산을 담당하는 피지배층으로 분화되어 복잡한 사회 구조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사회는 상당한 계급 분화가 이루어진 상태였으며, 귀족, 평민, 노비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귀족은 사회 경제에서 노예와 토지, 재화 등을 소유하고 촌락 공동체의 수장 역할을 하는 주요 세력이었습니다. 반면 평민은 기본적인 생산 활동을 담당하며, 가뭄, 홍수 등의 자연재해와 생산 기술의 한계로 인해 생산의 불안정한 상황에 처해 있었습니다. 이들은 상호 의존적인 공동체적 관계를 통해 생산과 소비생활을 살아갔습니다. 노비는 사회 구성원의 하위계층으로, 대규모 노예 관리가 발달하지 않았음에도, 일정한 수의 노비를 소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이 시기에는 이미 사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조치가 존재했으며, 화폐의 개념이 등장하고 노비제도의 존재 역시 확인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 경제적 변화는 고조선이 정치적, 사회적 체제를 갖추며 점차 발전하는 것을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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