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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중세 유럽의 역사

by 곰곰이@ 2024. 3. 28.

중세 유럽의 초기

중세 유럽 초기는 서로마 제국의 멸망(AD 476)과 함께 시작되어 대략 5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 르네상스가 시작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이는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으로 시작되는 유럽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의 시기였습니다. 서기 4세기부터 6세기까지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은 유럽의 정치적 지형을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중세 유럽 초기에서는 로마 제국의 법과 문화가 점차 사라지고 유럽 전역에 다양한 게르만 왕국이 세워졌습니다. 이 시기에는 지방 영주의 권력이 중앙 정부의 권력보다 강해지면서 봉건 체제가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기독교는 유럽 전역에 퍼지면서 중요한 사회적, 문화적 역할을 했습니다. 교회는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가 되었고, 수도원과 대학의 설립은 지식의 보존과 전파에 기여했습니다. 중세 유럽 초기 역시 농업 기술의 발전, 상업의 재개, 도시의 부흥으로 특징지어졌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유럽 사회의 복잡성을 점진적으로 증가시키고 경제적 기반을 확장시켰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는 또한 불안정과 전쟁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봉건 영주 간의 갈등, 외부 침략(예: 노르만 침공), 내부의 정치적 갈등이 유럽 전역에서 발생했습니다. 중세 유럽 초기는 유럽사에서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시기였으며, 근대 유럽의 기초가 놓인 시기로 평가됩니다.

 

10세기 이후 앵글로색슨족과 서고트족을 제외한 대부분의 게르만 민족은 프랑크 왕국이나 동로마 제국에 편입되었습니다. 프랑크 왕국에서는 카를 마르텔이 사라센 제국을 물리치면서 왕궁은 점점 강력해졌고, 피핀은 서기 8세기에 카롤링거 왕조를 세웠습니다. 이 기간 동안 프랑크 왕국은 로마 교황권과의 유대를 강화하기 시작했으며, 로마 교황은 그리스 교회에 적대감을 주기 위해 세속 군주들과의 유대도 모색했습니다. 이는 프랑크 왕국의 봉건 체제의 토대를 마련했고, 중세 시대에는 교황과 군주 사이의 동맹과 상호 이용이 발전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동로마 제국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통치 이후 발칸반도의 슬라브 이민자들과 국내 반란으로 시달렸으나 7세기 초부터 둔전병, 군관구제 도입을 통해 중앙집권을 강화했습니다. 8세기 초, 우상 숭배 문제를 두고 로마 교회와 갈등을 겪으면서 제국은 종교적, 정치적으로 그리스적 특성을 강화했습니다.

 

서기 7세기에는 이슬람이 성립되고 이슬람 문명이 탄생했습니다. 무함마드는 알라의 계시를 받아들여 사람들에게 알라에 대한 절대적 충성을 가르쳤으며, 메카에서 메디나로 피신한 후 아라비아 부족들을 통일하고 이슬람 세계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무함마드 사후 역대 칼리프들은 이슬람 세계를 건설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으며, 불과 100년 만에 중앙아시아, 인도, 북아프리카, 이베리아반도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이를 사라센 제국이라고 불렀습니다. 정복은 계속되었지만 제3대 칼리프 시대부터 교회 내부의 갈등이 표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1000년 카를 대제는 교황 레오 3세에 의해 로마 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여 중세 유럽의 정치, 문화 공동체를 확립했습니다. 카를 대제는 카롤링거 르네상스를 시작하여 서유럽의 공통 출발점을 확립했습니다. 그러나 지중해가 사라센에게 함락되면서 서유럽 세계는 교환경제에서 자연경제사회로 후퇴하게 되었고, 대황제 사후 왕국은 분열되어 동부 프랑크푸르트, 서부 프랑크푸르트, 이탈리아 등 3개 국가가 성립되었습니다. 영국은 또한 통일된 색슨 왕조를 세웠습니다. 이 기간 동안 유럽 전역에 장원 제도가 확산되고 주종 관계가 일반화되었으며 봉건 제도가 확립되었습니다. 장원이 지역적으로 집중되면서 영주의 지위가 강화되어 왕권과 충돌하게 되었고, 교회에도 교회령이 있어 중세의 2원적 통치 체제가 확립되었습니다.

 

중세유럽의 역사
중세유럽

 

중세 유럽의 중기

중세 유럽 중기는 대략 11세기부터 13세기까지 지속되었으며, 중세 초기와 중세 후기를 잇는 중요한 전환점이었습니다. 유럽 역사에서 이 시기는 인구 증가, 농업 생산성 증가, 상업과 도시의 르네상스 등 많은 긍정적인 변화의 시기로 간주됩니다.

 

십자군 전쟁은 이 시대의 시작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유럽과 중동 간의 교류를 증가시키고 상업 및 문화 교류를 활성화시켰습니다. 농업 기술의 발전은 생산성을 크게 향상시켰고 인구 증가와 도시화를 촉진했습니다. 유럽의 도시들은 크게 성장했고, 상인 계층의 성장과 함께 상업과 수공업도 발전했습니다. 또한 대학이 설립되기 시작했는데 이는 유럽의 지식과 문화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중기는 유럽 역사상 비교적 평화롭고 번영한 시기로 평가되며, 이 시기의 발전은 유럽 르네상스의 중요한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노르만인의 영국 정복, 세속 왕권과 교황권의 갈등, 이슬람 국가에 대한 기독교 국가의 반격의 시작은 모두 10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 세계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이었습니다. 스칸디나비아의 게르만계 노르만인들은 앞선 항해 기술과 약탈 활동으로 유럽의 여러 나라를 괴롭혔고, 1066년에는 영국을 점령했습니다. 이후 대륙에서는 프랑스와 자주 갈등을 겪었습니다.

 

그리스 정교회와 로마 가톨릭교회의 분열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에는 가톨릭 교황의 권력이 커지고 세속 세계의 최고 권위인 신성 로마 황제와 권력 투쟁이 벌어지는 시대였습니다. 성직의 서임을 둘러싸고 교황 그레고리 7세와 하인리히 4세 사이의 정면 갈등이 대표적인 예였습니다. 이 갈등의 결과 헨리 4세가 카노사에서 그레고리 7세에게 항복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교황의 권력은 절대화되었고, 세속 황제의 권력은 점차 쇠퇴하였습니다. 십자군 전쟁은 강력한 교황권에 의존하는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기독교 국가들의 반격이었습니다. 십자군 1296년부터 1300년까지 회교도들에게 점령된 성지 예루살렘의 탈환과 동로마를 구원한다는 명목으로 세 차례에 걸쳐 십자군이 행해졌는데, 이는 후세의 정치, 경제, 교통 등 여러 면에 걸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러한 영향은 볼로냐, 파리, 옥스퍼드 등 중세 대학의 다양한 영향과 함께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중세 유럽의 후기

중세 유럽 후기는 14세기에서 15세기 사이에 대륙을 강타한 일련의 위기와 변화를 가리킵니다. 이 기간 동안 급격한 인구 감소, 정치적 불안정, 경제 침체, 종교 분열 등 많은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특히 1347년부터 시작된 흑사병은 유럽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사회 전체에 극심한 혼란과 경제적 손실을 가져왔습니다. 동시에 중세 후기는 교황권과 중앙집권적 권력이 급속히 쇠퇴하는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교황과 세속 군주 간의 권력 투쟁, 즉 교황권과 왕권의 갈등은 유럽의 정치 구조에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이 기간 동안 종교개혁의 전조로 간주될 수 있는 수많은 종교 운동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유럽 사회의 구조와 가치관에 깊은 영향을 미쳤고, 궁극적으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으로 이어지는 유럽 사상과 문화의 부흥의 토대를 마련했습니다. 중세 유럽 후기는 큰 혼란과 변화의 시기이기도 하지만, 근대 유럽의 기초를 이루는 중요한 사건과 변화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유럽에서는 십자군 운동의 중심지였던 이탈리아의 상업 도시들이 중동 무역을 독점하고, 한자동맹 도시연맹과 함께 장거리 무역과 도시 개발을 추진했습니다. 화폐경제가 농촌에 침투하면서 지대를 금으로 전환하고 직접 관리하는 토지를 해방하는 등 장원 제도가 붕괴되었고, 도시에서는 귀족 상인의 지배하에 길드 혁명이 일어나 공장 수공업화가 진전되었습니다. 더욱이 십자군 운동의 실패로 상실된 교황권이나 황제권을 대신하여 왕권이 강화되었습니다. 이렇듯 관료와 상비군을 재편하고 사치를 장려하기 위해 세금을 인상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으나, 이를 통제하려는 도시민들의 정치적 목소리와 충돌한 후 성직 귀족, 세속 귀족들과 부딪혔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왕권 강화가 추진되어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백년전쟁이 벌어지고, 프랑스 왕에 의해 교황이 아비뇽에 유폐되고 교회가 분열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이러한 종교적 권위의 쇠퇴와 왕권 강화의 성격은 각 나라의 상황에 따라 다양했습니다. 귀족 권력이 막강했던 독일은 연방 국가를 세웠고, 상업자본이 축적되었던 이탈리아는 데스포트와 같은 전제군주제가 실현되었으며, 이베리아반도에서는 이슬람 세력에 대항할 필요에서 기독교가 탄생했습니다. 한편, 이슬람 세력의 공격에 맞서 서유럽을 보호해 주던 동로마 제국은 재탄생 후에도 끊임없는 위협을 받으며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