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과 역사
인더스 문명은 약 5300년에서 3700년 전, 즉, 기원전 약 3300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인더스강과 오늘날 파키스탄과 인도의 북서부 지역에 자리 잡은 청동기 시대의 고대 문명입니다. 이 문명은 체계적이고 발전된 도시 계획 아키텍처뿐만 아니라 하라파, 모헨조다로와 같은 도시를 포함한 고도의 경제 및 사회 구조로 유명합니다. 다양한 수수께끼를 가지고 있는 이 문명의 역사는 기원부터 멸망까지 여러 시기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초기 식량 생산 시대의 사람들은 약 8500년에서 7000년 전 사이에 메흐가르(Mehrgar) 지역에서 일반적으로 마을에 거주하거나 유목생활을 하였으며, 주요 농작물로 밀과 보리를 재배했고, 소, 염소, 양, 닭 등을 길렀습니다. 또한, 콩, 참깨, 호밀도 재배되었습니다.
약 7000년~5600년 지역화 시대에는 건축, 농업 및 목축 방식이 발전했습니다. 또한, 석재를 가공하고 연마하여 만드는 보석 세공 기술과 토기, 인장 등 다양한 공예품이 만들어지고, 녹로를 이용해 만든 도자기 등 다양한 종류의 도자기가 만들어졌습니다. 도자기에 그려진 글자들로 문자를 쓰고 있었음을 알 수 있고, 이러한 기술은 산길과 강가를 통해 여러 방향으로 전달되었으며 무역 확장과 정착생활로 도시화의 시작 단계를 보여줍니다.
통합 시대는 대략 4600~3900년 사이로 보이며, 인더스 문명의 전성기입니다. 모헨조다로와 하라파와 같은 대도시가 번성했으며, 이들 도시는 청동기와 구운 벽돌을 사용한 격자형 도시 구조, 사회 질서 및 법칙과 도량형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목욕시설과 석관을 사용한 지하 배수시설, 벽을 쌓은 도로와 계단으로 도시를 건설했으며, 다양한 채색 도자기와 홍옥수 장신구, 다양한 재질의 옷감과 염색 기술을 발달되었습니다.
인더스 문명은 지방화 시대에 문화적 통합 이전 시대로 되돌아갑니다. 지역 무역 시스템과 유물 양식에서는 이전 시대부터 이어졌지만, 정치, 경제 구조는 쇠퇴하고 붕괴되었으며, 소규모 지역 집단들이 등장했습니다. 도량형, 인장 등이 사라지고 장례 관습과 종교의식에 사용되는 물건도 바뀌었습니다.
인더스문명의 갑작스러운 소멸 원인은 명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약 1500년경 전부터 시작된 인도 아리아인의 침입, 사라스바티강의 소멸, 인더스강의 범람과 이에 따른 경로 변화, 수백만 개의 벽돌을 태운 대규모 삼림 파괴와 같은 이론이 제기되었습니다.
경제와 권력구조
인더스 문명은 약 9000년 전 목축과 농업의 역사와 함께 번성했습니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주로 소, 양, 염소 등을 사육하고, 고지대에서는 목축업을 하며, 강을 따라 저지대에서는 농사를 지었습니다. 밀과 보리를 주식으로 하였고, 세계 최초로 목화를 재배하여 면직물을 생산하였습니다. 또한, 각종 곡물과 해산물을 기반으로 한 식생활과 청동, 금, 은 등을 원료로 하는 수공업과 상업이 발달하여 장인 계층이 형성되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한 거대한 고대 무역으로 인해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인도 내륙에서도 다양한 상품을 판매했습니다. 인더스 사람들의 이러한 경제 활동은 남인도, 아프가니스탄, 페르시아에서의 금 채굴과 물물교환을 포함한 활발한 무역 활동을 통해 호화로운 금 장신구류의 제작으로 이어졌습니다.
인더스 문명은 제사장 중심의 공동체로 추정되나, 전통적인 왕국이나 뚜렷한 권력의 상징이 없어, 중앙집권적인 구조라기보다는 상인 계층을 비롯한 다양한 계층이 직접 관여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모헨조다로와 하라파에서 발견된 유적에는 종교 시설로 간주되는 대목욕탕을 제외하고는 명확한 종교 건물이 발견되지 않았으며, 왕족이나 귀족의 거주지, 관료적 조직, 호화로운 무덤이나 기념비적인 공공장소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확실히 이사회는 다양한 계급과 직업으로 이루어진 복잡한 사회였지만 국가를 형성했다는 증거는 부족했습니다. 이 문명은 모계 중심의 사회적 특성을 띠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도량형의 도입과 일관된 벽돌 크기를 통한 표준화를 시도함으로써 공동체 내에 어느 정도의 질서와 규칙성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종교와사상
인더스 문명에는 다양한 종교적 관습과 신앙 표현이 존재했으며, 큰 사원이나 기념비적인 공공장소가 없다고 해서 그곳에 종교가 없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대신 다양한 유적과 유물을 통해 복잡한 종교적 신념 체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영국의 고고학자 존 마샬(John Marshall)은 파수파티 인장에 새겨진 신이 힌두교의 신 시바(Shiva)의 원형일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인더스 문명의 사람들도 대지를 어머니 신으로 숭배했다는 증거는 여성상 테라코타와 소형 여성 조각품에서 발견되었으며, 이는 생산과 풍요로움을 상징합니다. 유적을 통해 창조와 해방 사상의 기원을 비롯한 힌두교의 세정 의식과 같은 종교적 관습이 인더스 문명에서 유래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인더스 문명의 사람들은 과감하게 과거를 버리고 새로운 도시로 이주하며, 새로운 사상과 이념으로 가득한 생활 방식을 추구했습니다. 이러한 특징은 인더스 문명의 사람들이 계속해서 새롭고 창의적인 도전을 이어갔던 계획된 신도시인 모헨조다로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문자
이 문명이 사용하는 문자는 아직 해독되지 않은 채 학계에 큰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수천 점의 조각품, 인장, 도자기에 새겨진 문자가 발견되며, 표어문자 형태로 주로 상업적 또는 행정적 목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문자의 구체적인 형태와 사용법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와 가설이 제시되었지만, 인더스 문명의 언어와 문자는 완전히 이해하기 위한 명확한 설명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인더스 문명의 언어가 드라비다 어족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추측하지만, 이 가설을 명확하게 입증할 결정적인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최근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고 있지만, 인더스 문명의 언어와 문자의 신비는 고대 역사의 여전히 풀리지 않은 중요한 문제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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